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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 태안화력서 비정규직 사망…중대재해처벌법의 한계

느긋한 판다 2025. 6. 1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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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 태안화력서 비정규직 사망…중대재해처벌법의 한계

 

어느 날 아침, 또 들려온 비극의 소식

햇살이 눈부셨던 어느 6월의 아침, 라디오 뉴스에서 짧게 흘러나온 단어 하나가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0대 하청 노동자 사망."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얼마나 많은 비명이, 고통이, 그리고 무관심이 담겨 있었을까. 나는 조용히 라디오를 껐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시작됐다. 아침 햇살도, 커피의 향도, 책장의 활자도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2018년, 김용균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 이후, 우리는 다짐했다. 다시는 같은 죽음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오늘, 2025년 6월. 우리는 또 하나의 이름 없는 청년을 태안화력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잃었다. 7년 동안 우리는 정말 무엇을 바꾸었을까.

“예방할 수 있었던 죽음은, 곧 타협의 산물이었다.”

누구의 잘못일까. 법은 존재했지만, 현장은 과연 바뀌었을까. 왜 우리는 여전히 이토록 처참한 뉴스를 반복해서 듣게 되는 걸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태안화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이번 사고는 2025년 6월 3일 오전 9시경, 충남 태안군에 위치한 태안화력발전소 내부 보일러 유지보수 구간에서 발생했다. 사고를 당한 27세의 하청 노동자는 보일러 내부 점검 작업 중 추락해 사망했다. 보도에 따르면, 작업 구간에는 난간이나 추락 방지 장비가 충분히 설치되지 않았으며, 안전감독관도 현장에 없었다고 한다.

사고 직후, 해당 작업은 외주 하청에 의해 수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원청은 한국서부발전이었고, 사고 노동자는 2차 하청 소속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주요 대상이 되는 ‘경영 책임자’는 이번 사건에서 얼마나 직접적인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경찰은 현장을 압수수색하며 관련 서류를 확보했지만, 현장 노동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미 여러 차례 같은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몇 년 전에도 같은 구역에서 사고가 있었어요. 그땐 다친 걸로 끝났지만, 이번엔 사람이 죽었죠.” — 익명의 노동자 증언

이번 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이는 구조적이고 반복적인 문제이며, 법의 효과성, 현장의 관리 실태, 노동자의 안전권 보장 등 여러 지점에서 한국 산업현장의 근본적 문제를 드러내는 신호탄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도입된 이유

중대재해처벌법은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되었다. 이 법은 2018년 태안화력 김용균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사회 전반에 확산된 "책임 있는 기업 운영"에 대한 요구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간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 사망은 연평균 2,000건에 달했지만, 책임자는 대부분 '안전관리 미흡'이라는 경고로 끝나거나, 아주 낮은 형량을 받고 풀려나는 구조였다.

법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안전관리 의무를 부여하며,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까지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도입 당시부터 많은 반발이 있었다. 특히 중소기업 및 하청업체들은 책임이 과도하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고, 실제 시행 이후에도 법 적용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어왔다.

“노동자의 죽음은 비용으로 계산되어선 안 된다.” —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촉구 시민행동

그렇다면 이 법은 실제로 얼마나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왜 여전히 태안화력 같은 곳에서는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는 걸까? 법의 존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이 다시 한번 우리 앞에 놓였다.

 

법 시행 3년, 달라진 건 무엇인가

2022년 법 시행 이후 3년 동안, 약 280건의 중대산업재해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고, 이 중 경영책임자가 기소된 사건은 43건에 불과하다. 실제로 실형이 선고된 건수는 5건이 채 되지 않는다. 이 수치는 법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한다. 법은 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같은 패턴의 인명사고가 벌어지고 있다.

현장을 책임지는 경영자들은 안전 조치를 하청에 위임했고, 위임된 하청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최소한의 안전만 유지했다. 이 사이에서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일했다. 특히 2차, 3차 하청의 경우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아 실제 책임 소재가 모호해지는 문제도 빈번히 발생했다.

TIP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하청 구조가 복잡할수록 책임이 희석되는 경향이 있어, 구조 자체의 개선 없이는 실질적 안전이 확보되기 어렵습니다.

2025년 6월 현재까지도, 이 법은 ‘상징적 존재’에 가까운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노동 현장의 실제 권력구조, 계약 구조, 작업환경 개선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법은 종이 위의 문장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법이 아닌, 구조를 바꿔야 진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이번 사고의 중심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고를 당한 청년은 정규직이 아니었다. 하청업체 소속의 계약직이었다. 이처럼 많은 공공기관 및 대기업에서는 정규직이 직접 수행하기 꺼리는 위험 작업을 외주화하고 있다. 이 구조는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고, 우리는 그 결과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2018년 김용균 씨도 마찬가지였다. 정규직이었더라면 작업환경은 조금은 달랐을까. 작업 전 충분한 교육이 제공되었을까. 사고 직후 응급대응이 더 신속했을까. 우리는 그 질문을 되묻고 있지만, 그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노동자들이 보호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때로는 죽음이라는 대가로 돌아온다.

“너무 당연하게 위험을 외주화했기에, 우리는 그 죽음을 남 일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이것이야말로 비극 중의 비극이다. 인간의 생명조차 '계약 형태'에 따라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법이 제정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정말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했는가. 아니면 여전히 ‘외주’라는 이름 뒤에 책임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안전보다 중요한 게 있었던 걸까

왜 아직도 같은 사고가 반복될까. 가장 흔한 대답은 ‘비용’이다. 안전장비 설치에는 예산이 필요하고, 인원 확충에는 인건비가 들어간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 안전은 비용으로 인식되고, 이윤과 충돌하는 구조 속에서 안전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경제 논리로 끝날 수 없는 문제다. 인간의 생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작업 현장에서 위험을 예방하는 데 필요한 수십만 원의 예산이, 한 생명의 무게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런 식의 판단을 내린다. 그 결과가 바로 태안화력에서 또다시 벌어진 비극이다.

TIP

기업의 안전예산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투자'입니다. 산업재해로 인한 손실과 사회적 이미지 하락은 장기적으로 훨씬 큰 비용을 초래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 단기적인 이윤과 성과지표, 아니면 장기적인 신뢰와 생명 존중의 문화? 이 질문은 경영진에게만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에게 던져진 물음이기도 하다. 기업이 바뀌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 전체의 기준 또한 바뀌어야 한다.

 

법의 사각지대, 책임은 누구에게?

태안화력 사고 이후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관련 법령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은 사업주, 경영책임자, 실질적 지배력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책임이 명확히 귀속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번 사고 역시 2차 하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원청인 서부발전이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처럼 다단계 하청 구조는 책임 회피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1차 하청은 2차 하청에게, 2차 하청은 현장 노동자에게 작업을 넘긴다. 사고가 나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실제로 형사처벌을 받는 사람은 현장의 소장이거나 중간 관리자일 때가 많다. 실질적인 권한과 자원을 가진 이들은 법망 밖에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책임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또 하나의 장례식을 준비한다.”

이 법의 구조 자체가 과연 실효적인지, 이제는 다시 한번 따져볼 시점이다. 경영책임자의 정의, 하청 구조에서의 책임 구분, 예방조치의 범위 등 여러 측면에서 법은 여전히 많은 사각지대를 안고 있다. 법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해결의 시작은 구조적 투명성에서 시작된다. 모든 작업이 어떤 구조에서 이루어지는지, 누구의 책임 하에 진행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적 강화뿐 아니라 정보공개 및 감독 체계의 실질화가 필요하다. 현장 노동자들이 언제든지 작업 중단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강화되어야 한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중대재해 대응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주요 개편안에는 하청업체의 책임 강화를 위한 등록제 도입, 원청의 관리·감독 강화, 실시간 현장 감독 앱 운영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 또한 실행력과 감시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보여주기식 조치에 머물 수 있다.

“법은 종이 위에서가 아니라, 현장 바닥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단순한 제도 개편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위에서 정한 안전 기준이 아니라, 아래서부터 요구되는 생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게 바로 진짜 변화의 출발점일 것이다.

 

변화는 가능한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때로는 무력감이 앞선다. 법도 생겼고, 사고도 알려졌고, 언론도 보도했지만, 바뀐 것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가능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한 사람, 한 단체의 의지에서 출발한다. 노동자들의 안전권을 보장하고, 기업의 윤리적 책임을 강화하는 일은 단순한 규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 사회의 존엄에 관한 문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지만 분명하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 유가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관련 법이 유명무실해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 그리고 안전을 비용이 아닌 권리로 인식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TIP

중대재해 사고 후에는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을 통해 사고 원인 및 대처 현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심과 감시는 사회를 바꾸는 첫걸음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잊을 것인가, 아니면 기억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말할 것인가. 그 선택이 모여 이 사회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기억과 기록, 그리고 다시는이라는 다짐

나는 오늘도 그 이름 없는 청년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본다. 어둡고 덥고 좁은 보일러 내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공간에서 그는 어떤 마음으로 마지막을 맞이했을까. 그는 그저 일하러 갔을 뿐이었다. 가족을 위해, 삶을 위해. 그 선택이 죽음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기록해야 한다. 잊지 않기 위해,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다시는’이라는 말이 공허하지 않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은 완전하지 않지만, 그것이 바꿔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더 이상 사람이 죽지 않는 일터.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

“다시는… 그 말의 무게를 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때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위험을 감수하고 일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곁에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다시는, 같은 죽음을 반복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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